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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 1. 모세의 율법과 자본주의 (신앙과 경제 1)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위기 19:35, 36) 

모세의 율법에서 제시하는 가나안 땅에서의 생활규범은 중요한 경제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이 제도는 바벨탑에서 흩으셨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첫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수천년이 지나는 동안 기독교의 무게중심에 있었던 유럽이 모세의 율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 제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불과 최근의 1-2세기 정도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오랜 세월동안 기독교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지시하신 사회제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교회가 앞장서서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는지 묻게 된다.

상기 현상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사회속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또 이 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부재였다고 볼 수 있다. 헤어날 수 없는 의식주 문제의 한계속에서 우리에게 어떤 사회적 책임이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Message 2. 율법의 완성과 거룩한 제사장의 책임 (신앙과 경제 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한복음 2:19)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가장 거슬렸던 예수님의 주장 중에는 성전에 대한 예언이 있었다. 즉 이 땅의 성전을 허무시고 삼일 동안 손으로 만든 성소가 아닌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을 세우시겠다는 말씀을 그들은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지난 2000년 동안 인간사의 변천과 오늘의 사회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이 말씀은 단순하게 종교적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포함한 인간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예언해 주고 계셨던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들의 이해의 역량을 초월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기독교인의 여호와 이시며 동시에 모든 인류와 만물의 창조주 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부르신 것은 구원의 놀라운 은혜에 동참하게 하려 하심이다. 그런데 이런 은혜안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고 예수님은 이를 곧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묘사하셨다. 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세상속의 거룩한 제사장의 역할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의 제사장의 역할에 대하여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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